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전쟁 보다 더 심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 떠오르는 명언이 하나 있는데요.’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 라는 스피노자의 명언입니다. 이는 아무리 힘든 상황속에서도 미래를 위한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리는데요. 스피노자는 18세기 계몽주의와 근대 성서 비판을 토대로 유럽 17세기 철학의 합리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1632년 포르투갈에서 가톨릭 교회의 종교 재판과 유대인 탄압을 피해 망명한 유대인 아버지 미겔 지 이스피노자와 어머니 아나 데보라 이스포노자 사이에서 태어았습니다. 그의 출생지는 네덜란드 암스트르담인데요. 스피노자의 부모님은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암스테르담 유대인 회의 출생 기록부에 바뤼흐 스피노자라는 이름으로 그를 등록했습니다. 그의 친할머니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고 하는데요. 스피노자는 5세 때 유대인회 에츠 하임에 등록되어 탈무드 학교 랍비 사울 레비 모르테이라 밑에서 유대교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는 1654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수입 상품점을 물려받게 되는데요. 스포노자는 유대 공동체에서 전통적인 유대교 교육을 받았으며 랍비가 될 것이라고 촉망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라틴어를 배우고 철학과 아랍 철학을 접하게 되면서 유대교의 교육에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후 르네상스와 데카르트 등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1651년 독자적인 사상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피노자는 유대교 비판과 신을 모독했다는 구실로 탄압을 받고 추방되어 저주의 파문 선고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유대식 이름은 ‘베네딕트’로 바뀌게 되는데요. 그 뒤 스피노자는 운명에 순복하지 않고 오로지 철학적인 진리의 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1660년 라인스부르크에서 ‘지성 개선론’을 저술하였고 이후 ‘데카르트 철학의 여러 원리’를 출판하였습니다. 1670년 ‘신학 정치론’을 이명으로 출판하였다가 유대 사회의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는 도처를 돌아다니면서 헤이그에 머물며 1675년 저작 ‘윤리학’을 완성하였지만 출판하지 못하게 됩니다.
윤리학은 기하학의 논증법을 응용하여 윤리학을 정리한 책입니다. 그는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안경렌즈를 연마하는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독일 최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부터 초빙을 받았지만 자유로운 철학 활동을 보장하지 않는 곳에서는 일할 이유가 없다면서 이를 거부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고독과 빈곤속에서 44세의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세계관에 있어서 무신론적인 성향이 강한 일원론적인 범신론이 주요사항이라고 합니다. 그는 독일 관념론에 영향을 끼쳤으며 계몽주의, 사회 주의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스피노자는 신은 존재하지만 추상적이고 비개인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스피노자의 관점은 고전적인 범신론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요. 이 때문에 ‘신에 취한 사람’으로 불리기도 할 만큼 그의 철학에서 핵심적인 개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종교적인 시각에서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이단으로 취급하였으며 에피쿠로스주의자는 현대의 양자 역학에 대한 사상의 선상에서 확률적인 경로를 갖는 원자만이 유일한 실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논증은 스토아 학파와 유사하며 현대철학에서 일반적으로 스피노자의 철학이 스토아 학파 철학의 연장선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것이 하나의 실체이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과 우리가 그 일부인 실체를 통솔하는 질서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코나투스와 자연을 언급하였는데요. 코나투스는 힘을 뜻하며 살고자 하는 욕구나 의지를 말한다고 합니다.
스피노자는 코나투스의 완전한 표출을 행복으로 보았으며 코나투스를 발휘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연이란 신이나 하나뿐인 실체와 같은 개념입니다. 무한자는 능산적 자연으로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궁극적인 힘을 말합니다. 이와 대비되는 유한자는 산출된 자연이며 이 두 자연은 힘을 갖는 다고 말합니다. 스피노자의 사상은 괴테, 루소, 헤겔 등에게 큰영향을 끼쳤습니다. . 그는 유대인 사회와 단절되었고 가족도 일찍이 잃게 되었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스피노자 연구 모임이 있을 정도로 그의 사상에 매료된 지지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숙집 주인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온화한 철학자로 주변사람들이 존경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철학에 관용적이었던 네덜란드에서도 위험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익명으로 출간된 신학정치론은 그의 사후에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명언들은 아직도 우리곁에 숨쉬고 있으며 순간적인 지구 변화에 연연하지 않고 갈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심오한 뜻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책의 한구절이 인상적인데요. ‘정신은 사물의 현실적 존재를 파악함으로써가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영원의 상 아래에서 파악함으로써 모든것을 인식한다.’ 는 의미신장한 말도 남겼습니다. 그의 삶은 마치 그가 뱉어낸 말들처럼 이어졌고 끝이 났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 자신만의 연구를 세상에 알린 그의 노력과 용기에 깊은 감명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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