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추앙받는 대표적인 철학자입니다. 그는 퇴폐성비판, 어무주위, 위버멘쉬, 도덕비평,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다양한 사상을 발표하였으며 우리사회의 평견을 깨는데 일조한 인물로 알려지는데요.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독일 프로이센의 작센지방의 작은 마을 뢰켄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프러시아의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서 따온것으로 알려지는데요. 니체의 아버지는 카를 빌헬름 루트비히 니체로 루터교회 목사이자 전직 교사로 알려집니다. 그는 프란치스카 욀러와 결혼하여 니체를 출산하고 1846년에 여동생인 엘리자베스 니체가 태어났습니다. 이후 남동생 루드비히 요셉이 태어났습니다. 니체의 아버지는 1849년에 뇌질환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어린 남동생도 1850년에 사망하였습니다. 이후 니체의 가족은 나움부르크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니체의 할머니와 아머지의 두 자매, 두 하녀들과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니체는 1851년 소년학교를 입학하였고 1854년에는 나움부르크에 있는 돔 김나지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음아과 언어에 재능을 가졌고 이때 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국제적으로 명성있는 슐포르타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파울 도이쎈, 칼폰 게르도르프 등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또한 니체는 시를 짓거나 음악을 작곡하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1864년 니체는 학교를 졸업한뒤 고대철학을 본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때 신앙을 상실했는데 이러한 계기는 다비드 슈트라우스가 쓴 ‘예수의 생애’라는 서적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이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리츨 교수 밑에서 철학을 공부하는데 집중하였으며 이듬해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겼다고 전해집니다. 1865년 그는 쇼펜하우어의 글들을 배우게 되었고 1867년 군에 자원하여 1867년 10월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나움부르크에서는 프로이센 포병으로 한해 동안 복무하였고 이후 말을 타다가 사고를 당해서 군복무를 지속할 수 없게 되자 다시 학업으로 돌아왔습니다. 1868년 10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으며 고전문학자 에르빈 로데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니체는 24살에 이츨의 도움으로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고전문헌학 교수에 취임하였습니다.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면서 그는 프로이센의 국적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니체는 1868년 부터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알고 지냈으며 그의 부인과 그에게 매우 감탄했다고 알려집니다. 하지만 이후 바그너가 점차 기독교화되고 기독교적인 모티브를 많이 이용하자 국수주의와 반유대주의로 빠진 그와 결별했다고 알려집니다. 그는 1869년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시험과 논문없이 출판된 저술만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어 ‘비극의 탄생’을 썼습니다. 이후 ‘반시대적 고찰’이란 네편의 에세이를 썼으며 이는 독일 문화의 발전 노선에 도전하는 문화비평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79년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을 출판하였으며 이후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철학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니체는 바젤 대학교의 교수직을 사임하였고 이후 조용히 산속으로 들어가 요양과 집필에 전념했습니다. 하지만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졸도한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보내게 됩니다. 니체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후 완전히 정신 상실자가 되었고 이때 부터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니체는 이후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죽었습니다. 니체는 기독교에 대해 ‘기독교는 대중을 위한 플라톤 사상에 불과하다’ ‘나는 디오니소스 신의 마지막 제자이자 정통한 자이아. 나는 기어이 한 번 쯤 내 친구인 그대들에게, 나에게 허락하는 한, 이 철학을 조금은 맛보게 하는 일을 시작해도 좋을 것이 아닌가?’ ‘허무주의는 병리적 중간 상태를 표현한다.’ ‘새겨두어야 형제들이여,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창조하는 것이다.’
‘세계가 생겨난 이래로 지금껏 스스로에 대한 비평을 허용하는 권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 이 우너숭이들을 보라, 이들은 권력을 우너하며, 무엇보다도 권력의 지렛대인 돈을 원한다. 이들 모두는 높은 권좌를 원한다. 그러나 권자 위에는 똥이 있는데.’ ‘천재는 작업이나 업적에서 필연적으로 낭비하는 자이다. 전력을 다한다는 것 이것이 그의 위대함이다. 말하자면 자기 보존 본능이 풀어져 있다. 발산되는 힘의 압도적인 압력이 그에게 그러한 보호와 신중함을 금한다.’ ‘선과 악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은 항상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양심, 좋은 평판, 지옥, 경우에 따라서는 경찰 역시 솔직함을 허용하지 않았고 지금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세계가 생겨난 이래, 자신을 비판의 대상으로 만드는 권위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더구나 도덕을 비판한다는 것, 도덕을 문제로 삼고 의문시한다는 것은 비도덕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등 세상에 많은 명언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많은 언어적 표현은 지금보아도 여러가지 측면을 포괄하는 개념이자 우리가 알고 있었던 많은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세상의 많은 철학자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가지고 생각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대가 급격하게 변화했던 시대를 거쳐간 인물들이 더 다양하고 의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발상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철학이라고 하면 그냥 본인의 생각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철학은 우리인류가 발전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연구되어야 할 과학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지금쯤 어디선가 이들을 뛰어넘고자 하는 위대한 철학자의 생각이 지속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사람은 다음세기 사람들을 위한 또 다른 니체가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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