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성병 중 하나인 매독은 과거에 치사율이 상당히 높은 질환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위인들 또한 매독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요. 매독은 스피로헤타라는 병균에 의해 증상이 나타나게 되며 피부 궤양에 매화꽃 같은 모양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매독의 출현 배경은 기원전 유럽인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그곳의 매독균을 보유한 원주민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후 유럽대륙으로 귀환하면서 구대륙에 유입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매독균의 병원균인 스피로헤타를 발견한 사람은 서양인이 아닌 동양인 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일본의 의사이지 세균학자인 노구치 히데요인데요. 그는 1876년 11월 9일 일본 제국 후쿠시마현 야마군 이나와시로 정에서 출생하였으며 가난한 농부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생후 18개월때 집안에 놓아둔 화로에 의해 손가락이 붙어버리는 장애를 갖게 됩니다. 이후 그는 교사가 꿈이었지만 손의 상처로 인해 의사가 되어야 겠다고 결심을 하고 자신의 손을 수술해준 와타나베 가나에 박사의 조수로 들어가서 의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이후 20세가 되던해 의사면서 시험해 합격하여 의사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불구의 손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기에는 환자들의 기피가 심했기 때문에 의사로 살기 힘들어져 병원 원인을 연구하는 생리학자가 되기로 합니다. 이후 당시 세계적인 생물학자였던 기타사토 시바사부로 박사의 연구소에 취직하였는데요. 노구치 히데요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여 외국 논문들을 번역하는 일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때 미국의 유명한 의사인 플렉스너 박사의 통역을 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후 노구치는 국제방역단의 대표로 청나라에 파견되어 페스트 방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선진 의학을 미리 접한 노구치 히데요는 플렉스너 박사에게 용기를 내어 같이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플렉스너 박사는 이를 간단하게 잘라버렸으며 1900년에 결혼하고 받게된 축의금을 모아 막무가내로 미국에 가는 여비를 마련했습니다. 마침내 미국에서 플렉스너 박사를 만나게 된 노구치 히데요는 결국 플렉스너 박사의 조수로 펜실베니아 대학의 연구원으로 취직하게 됩니다. 얼마후 플렉스너 박사가 록펠러 의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 계기가 있었고 그 역시 박사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현재 록펠러 대학교의 전신으로 생물학에서는 세계에서 순위를 다투는 연구소였다고 전해집니다.
노구치 히데요는 처음 그곳에서 뱀의 독과 같은 독성학을 연구하다가 이후 마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그때 마비의 원인을 ‘스피로헤타’라는 세균의 침입에 의한 것으로 밝혀냈고 그 병원균의 발생원인이 매독에 있음을 알게 되어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노구치 히데요는 여러가지 세균성 질환들을 연구하던 끝에 황열병의 원인균을 찾아내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노벨생리학, 의학상 후보에도 오르게 됩니다. 이후 중남미로 가서 많은 사람들을 살려내게 되었으며 황열병을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결국 황열병을 얻게 되어 1928년에 52세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동안 약 2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여러가지 세균질환을 연구해 원인을 찾는데 생애를 바쳤습니다. 노구치 히데요는 일본의 슈바이처라 불리며 일본의 1000엔 지폐에 새겨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많은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의학자이자 동양인으로서 귀감이 되는 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서 그의 위인전을 읽으며 장애는 위대한 인물이 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핸디캡 또한 어느 누구나 생길 수 있는 일종의 해프닝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지가 멀쩡해도 위대한 발병하나 위대한 작품하나 만들지 못하게 생애를 끝마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장애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향해 최선을 하다고 만족하지 않았던 그의 희생과 열정으로 세상은 다양한 바이러스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펜데믹 시대 또한 이렇게 위대한 의학자들의 연구가 있기에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도 출시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그 사람들의 일화와 명성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기가 지나가면 그 분들의 노력과 헌신 역시 같게 평가될 것입니다. 동양인은 예로 부터 해외에서 성공을 하면 크게 알아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 또한 아시아인들의 성향이자 특징일 것입니다. 이는 그또한 아시아인이라는 한계를 가진 사람들이 세계의 무대에서 그들의 입지를 나타내고 인류에 공헌한 사실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 어렸을 적에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직 제 인생이 많이 남은 만큼 더 정진하여 조금이라도 무엇인가를 남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릴적에 읽었던 노구치 히데요의 위인전과 만화 ‘닥터 노구찌’는 힘들었던 학창시절 위안이 되는 대표적인 콘텐츠였습니다. 정작 비화를 들어보면 위인전에 나올만한 인물의 성격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어찌되었던 그가 훌륭한 일을 한것을 사실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결혼도 두번하였으며 알려지지 않은 많은 비화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생정신 없이 아프리카로 건너가 자신의 연구를 하다가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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