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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

by 채리의 행복한 세상 2021. 4. 26.

요즘에는 리더쉽에 대한 글들이 참 많습니다. 이러한 리더쉽에 대한 논쟁은 기원전 때 부터 인류에게 거론되었던 주제인데요.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이론에서 국가의 수준은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는 시민이나 지도자들이 얼마나 탁월한 숙고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요구되는 논점인데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그리스 북부 할키디키반도에 위치한 트라키아 지방의 스타게이라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아버지인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 왕 아민타스 2세의 시의였고 어머니인 파이스티스는 칼키스의 이민자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필리포스 2세 왕자와 소꿉동무로 궁정에서 자랐지만 어려서 양친을 여의고 연고자인 프록세노스에게 맡겨졌다고 합니다. 그는 17세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입학하였고 약 20년간 아카데미아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이오니아 문화를 배경으로 의가의 실증정신 아래 성장한 그에게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이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을 그대로 수용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사망하면 아카데미아의 원장이 될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탈락하고 플라톤이 원장직을 물려주자 그는 아타르네우스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당시 아타르네우스의 참주인 헤르메이아스 역시 아카데미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친분이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를 초정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동물학, 식물학 연구에 매진하였으며 플라톤이 사망한 이후 본격적으로 이데아 이론을 까기 시작합니다. 그는 아타르네우스의 지도자인 헤르메이아스의 이복동생 퓌티아스를 둘째 부인으로 맞이했으며 딸을 낳고 3년간 잘 살았지만 헤르메이아스가 페르시아인들에게 암살당한후 인근 레습스 섬의 뮈틸레네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아카데미아에서 수학한 플라톤의 제자이자 레스보스 출신인 테오프라스토스의 추천이 강하게 작용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는 뮈틸레네에서 3년을 함께 보냈으며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고 합니다. 기원전 342년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의뢰로 알렉산드로스 왕자의 가정교사로 미에자에 갔는데요. 왕자를 위하여 호메로스를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군주정치론> <식민정책론>도 저술하였습니다. 그의 제자는 그리스와 중동 전역까지 다니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높은 명성을 얻게 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인도 원정길에서 요절한 후 마케도니아가 분열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들을 정복한 마케도니아 출신에다 마케도니아 왕의 스승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하자 불경죄로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는 한때 둘째 부인을 소개해준 헤르메이아스를 위한 시를 지었는데 그는 한때 노예였고 노예 시절 거세를 당하기도 했는데 아테네 찬가에서 감히 노예 출신 고자를 신성한 신들에게 비유했다는 명복이었습니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보이아의 칼키스라는 작은 섬나라로 망명하여 연구를 지속하다가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업적중 가장 위대한 철학적 작업은 형이상학입니다. 

 

형이상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 일부 이슬람 철학자, 스콜라주의 그리고 단테와 같은 문학가들에게 굉장히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요. 사실 형이상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의 아카데미아에서 이루어졌던 일상적 감각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조화시킨 작업의 결과이자 자연과학적 탐구의 결실이라고 합니다. 플라톤의 일원론에 따르면 실제 사물계는 영원하고 불변하다고 설명했지만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물질세계는 일시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재적 통찰은 플라톤의 주장과 상반되는데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은 후세의 형이상학에서 의미하는 내용의 것을 ‘프로테 필로소피아’ 또는 ‘테올로기게’라 하여 존재 내지는 실체란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일을 중심으로 연구했습니다. 형이상학에는 세가지 핵심적인 질문이 존재합니다. 첫째 존재란 무엇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어떻게 분류되는가? 둘째 어떻게 어떤 대상이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음에도 우리가 실제 세계에서 이 변화를 경험할 수 없는가? 셋째 이세상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우리 곁에 있는 자연 세계의 변화를 둘러싸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방법론과 이론들이 구체화 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 대한 학습내용을 곧장 형이상학이라는 개념으로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그는 현존하는 모든 대상에는 변화가 있고 그기저에는 그것을 가능하게끔 하는 원인이 있으며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대상이 있다면 변화의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내의 모든 대상에는 질료와 형상이 있음을 주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있는 것으로서 있는것에 대한 지식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했으며 모든 앎중에서 가장 본질적 앎을 찾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 깊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바람은 왜 부는가? 물은 어디서 생겨났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어처구니가 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듯 아리스토텔레스나 그 시대 철학자들은 우리의 존재, 자연의 존재 등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의 연구와 노력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철학과 사상에 영향을 주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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