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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플라톤

by 채리의 행복한 세상 2021. 4. 24.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된 사상가나 철학가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중 서양 철학자 중 대표적인 인물 플라톤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전의 철학자이기도 한데요. 플라톤은 올바름이란 무엇인가를 세상에 알려 인류 지성사에 큰 영향을 미친 대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습니다.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출생연도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원전 430~429년전으로 알려집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데요. 플라톤의 부모님은 모두 아테네 명문 귀족 출신이었으며 그의 가족들은 그의 저서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기도 합니다. 플라톤이라는 이름은 ‘넓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는 그가 어깨가 넓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알려지며 키가 크고 몸집이 큰 사람이었다고 알려집니다. 고대의 그리스는 지, 덕, 체를 현대 만큼 뚜렷하게 구분하며 살지 않았던 시대이기에 그는 그림과 시를 즐겼다고 합니다. 플라톤이 스무살이 되던 해 플라톤은 그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소크라테스를 만나기 전까지 플라톤은 원래 친가, 외가 모두 명문가로 그의 외가족 5촌 당숙인 크리티아스는 30인 정권의 핵심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크리티아스가 정권 싸움 과정에서 살해당하며 아테네에 민주정이 들어서면서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어이없게 고발되었다고 하는데요. 재판에서 배심원의 투표에 의해 사형이 정해지자 그는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고 알려집니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억울하게 죽어가는 과정에서 민주정에 환멸을 느끼고 그가 철인정치를 주장하게 계기가 되었다는 추정이 있습니다.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망한 후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메가라, 키레네의 다른 수학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 학파를 찾아갔으며 그뒤 이집트의 성직자를 찾아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플라톤은 이후 학당 ‘아카데미아’를 세웠습니다. 아카데미아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서기 529년 폐쇄될 때까지 지속된 학당이었습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 텔레스는 플라톤이 만든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했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당시 아테네의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철학을 선택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실제로 그의 철학과 사상은 현실 극복과 바람직한 사회 구현에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플라톤은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81세의 나이에 사망하여 아카데미아에 묻혔다고 합니다. 플라톤이 전개한 철인정치는 기본적으로 엘리트에 의한 지배를 옹호하는 사상입니다. 일반적으로 귀족은 평등사회가 아닌 신분사회를 옹호하며 플라톤 또한 신분사회를 옹호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귀적정의 궁극적인 목적과 그 실현 양태는 다른 것입니다. 플라톤의 귀족정은 왕은 높은 신분으로서 도덕적인 의무를 중시해야 하며 그 실현은 왕의 사유재산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왕의 사유재산은 오직 공익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며 그 밑의 귀족들까지도 사유재산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신분의 상징인 왕이 그만큼의 도덕적인 의무를 실천해야함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가 말한 귀족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무사계급의 귀족이나 세습에 의한 귀족이 아닌 철학 지식이 충만한 학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는 지식인에 의한 독재를 줄곧 주장해왔으며 시민 계급에 의한 토론 정치인 아테네의 민주정을 우민정치라고 비판해 왔습니다. 플라톤이 철인정치에서 주장한 네가지 주된 덕은 네가지 덕에 맞는 각자의 신분에 맞은 일만을 해야 하며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플라톤의 사상 중 핵심이 되는 이데아론은 소크라테스와 파르메니데스에게 물려받은 사상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이런 개념 정의를 좀 더 고급화하고 체계화했으며 그는 우리 인간의 인식 이나 앎과 개념의 근저를 이루는 그 무엇으로 표현했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에 대해 나무를 예를 들었는데요.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이건 나무로 만들어 주고 우리가 그것을 나무라고 인식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무언가가 있을 것이며 그것이 바로 나무의 이데아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형상에 관해 플라톤은 일종의 생득적인 개념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 인간들은 이미 혼의 수준에서 알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혼의 개념은 윤회설과 이어지게 되는데요. 우리 인간의 혼은 불멸하며 육체와 육체를 떠도는데 새로운 육체에 깃들대 기억을 잃게 된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우리는 형상과 마주할 경우, 혹은 형상과 마주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미 알고 있던 형상을 상기해서 알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상기할때 관련된 것과 마주했을때 쉽게 상기하게 되는 것처럼 상관없는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말하며 이를 상기설이라고 부릅니다. 플라톤은 이러한 상기설을 바탕으로 착한 이성과 철학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욕심이나 감정과 욕구의 삶을 살게 되면 죽어서 사람이 되기 힘들고 동물이 될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혼이 새육체로 들어갈때 깨끗한 이성과 철학의 삶이 아니라 찌든 삶을 살면 혼이 오염되어 버리는데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 감정과 욕구에 휘둘리는 동물의 육체에 적합하게 되어버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플라톤이 설명한 이데아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너무도 모호한 개념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것이 윤회설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그의 사상은 원초적이며 종교적이기 까지 한데요. 이러한 철학과 사상이 그 오래전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 그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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